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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2년 연속 1%대 성장 가능성… 日 '장기 저성장' 남 일 아니다

해선매니저박하림 2024. 1. 2. 09:33

 

한국 경제가 장기 저성장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경고가 계속해서 들려온다. 2023년 우리나라가 외환위기 이후 25년 만에 처음 ‘저성장 대표 주자’인 일본보다 저조한 경제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에 이어, 사상 최초로 2년 연속 1%대 성장이라는 충격적인 경제 성적표를 받아들 수 있다는 우려까지 심심찮게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2023년 1.9%로 추정했다. 이는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3년(3.5%)과 비교해 거의 반토막 수준이다. 잠재성장률은 한 나라가 가진 노동·자본 등의 생산요소를 모두 동원하면서도 고물가 등의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는 가장 높은 수준의 경제 성장률을 뜻한다. 쉽게 말해 한 나라 경제의 ‘기초 체력’이다.

OECD에 따르면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은 지난 10년 새 절반으로 뚝 떨어진 셈이다. 특히 OECD가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2% 아래로 추정한 것은 2023년이 처음이다. 심지어 OECD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24년에는 더욱 낮아져 1.7%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는 미국의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수준이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미국보다 낮게 추정되는 현 상황은 경제 덩치가 훨씬 큰 미국보다 우리의 경제 활력이 더 떨어진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경제의 체력 자체가 달리니 정부가 향후 적극 경기 부양에 나서더라도 실질 성장률을 개선하는 데에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50년 후 세계 경제를 전망하는 보고서를 내면서 한국이 낮은 잠재성장률 고착화로 인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지적한 이유다.



◇韓 장기 저성장 코앞에…2년 연속 1%대 성장 우려

한국의 장기 저성장 진입을 경고하는 목소리는 중앙은행인 한국은행 내부에서도 나왔다. 한은의 지난해 8월 경제전망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률은 2023년 1.4%, 2024년 2.2%로 예상됐다. 자연스레 세간의 관심은 연 1%대에 불과한 2023년 성장률에 집중됐다.

한국의 연간 성장률이 뚜렷한 위기 없이 1%대로 떨어지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간 우리 경제는 외환·금융위기 등으로 인해 역성장이나 0%대 성장률을 기록한 적은 있지만 뚜렷한 위기를 겪지 않은 통상적인 경우에서 1%대 저성장을 한 연도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심지어 한은의 예상이 맞는다면 2023년 한국은 경제 성장률 측면에서 일본(2.0%, IMF 전망)에 추월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국의 한 해 성장세가 일본보다 뒤떨어졌던 적은 아시아 외환위기가 발발했던 1998년이 마지막이었다. 그 후 한국은 일본보다 매해 빠른 속도로 성장해 왔다. 그러다 25년 만에 역전을 허용하게 된 것이다.

2024년까지 시야를 넓힐 경우 한국의 저성장 우려는 더욱 심각해진다. 한은에 따르면, 지정학적 갈등이 심화하면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고 이차 파급효과가 확대되는 경우 한국의 성장률은 2024년 1.9%에 그칠 것으로 분석됐다. 대외 상황이 받쳐주지 못할 경우 2023년만 아니라 2024년에도 성장률이 1%대로 주저앉을 수 있다는 경고다.

외국의 시각도 마찬가지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해외 주요 투자은행 8곳은 지난해 10월 말 기준 한국의 2024년 성장률을 평균 2.0%로 전망했다. 지난해 9월 말 평균치와 비교하면 한 달 새 0.1%포인트(p) 올랐으나 여전히 한은의 전망치인 2.1%보다는 0.2%p 낮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자칫 국제유가 상승, 중국 경기의 추가 악화 등 불안 요소가 자극되는 경우 한국의 성장률은 2년 연속으로 2% 선이 붕괴될 위험성이 있다고 본 셈이다.

2년 연속 1%대 성장이 현실화한다면 이는 우리나라가 1954년 경제 성장률 통계를 집계한 이후 사상 최초가 된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대형 경제 위기가 터진 다음 해에는 기저효과와 위기 극복 등에 따라 반드시 높은 성장률을 구가하곤 했다. 그런데 2023~2024년에는 어떠한 위기도 없이, 그것도 2년 연속으로 저성장이 관측됐다.



◇韓 위기 배경엔 ‘중국의 위기’…이제 반사이익 기대 어려워

한국 경제의 저성장이 예상되는 근본 배경에는 어느덧 성장 한계에 다다른 중국 경제가 자리 잡고 있다. 중국 경제는 지난 20년 동안 눈부신 성장으로 세계 경제 호황을 이끌었으나 코로나19 사태를 거치고 2023년 들어서는 눈에 띄게 부진해져 지난해 7월 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를 나타내는 정도가 됐다.

중국 경제의 부진은 짧은 시일 내 끝날 일이 아니라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의 분석이다. 중국 경제의 덩치가 커지면서 이제는 고도성장이 가능한 수준을 넘어선 데다, 부동산 부문에 거품이 끼는 등 그간의 초고속 성장에 따른 부작용이 심화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의 경기 침체를 다룬 집중 분석 기사에서 “중국의 잃어버린 10년은 이미 시작됐다”고 경고했다. 1997~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예측했던 노벨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한 발 더 나갔다. 그는 뉴욕타임스(NYT) 칼럼을 통해 “미래 중국은 장기 불황에 빠진 일본의 전철을 따르지 않을 것이고, 아마 더 나빠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먹구름 낀 중국 경제가 한국 경제에 중장기 위협 요소라고 입을 모은다. 애당초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를 지녀서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서는 중국의 장기 불황이 달가운 일일 수 없다. 일각에서는 지난 10년간 세계 경제 성장의 40%를 담당한 중국의 침체는 전 세계의 침체라고도 해석하고 있다. 심지어 한국의 대중 수출 의존도는 20%에 달한다. 중국의 경기 침체가 곧 한국의 수출 부진, 성장 둔화로 이어지는 양상이 이미 관찰되고 있다.

앞으로 중국은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불황을 겪을까. 주요 투자은행들은 중국의 성장률이 매년 0.4%p씩 둔화해 2027년에는 3.8% 내외로 떨어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세계은행(WB)은 중국이 전면적 구조개혁에 성공할 경우 2030년까지 연평균 5.1% 수준의 중속(中速) 성장을 지속할 수 있지만, 개혁이 실패로 돌아가는 경우에는 연평균 2~3% 성장에 그칠 것이라고 예측했다. 연간 2~3% 성장은 지금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과 유사해 과거 중국의 초고속 성장기에 누렸던 반사이익을 기대하기 힘든 수준이다.



◇저성장에 고물가 ‘설상가상’…조속한 금리 인하 방해

한국 경제에는 이 같은 저성장 우려와 함께 ‘고물가’라는 함정 또한 도사리고 있다. 당초 월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연말이면 3% 내외로 낮아질 것이라고 봤던 한은은 지난해 10월 물가 상승률이 3.8%로 한 달 새 오히려 0.1%p 오르자 “물가 상방 리스크가 높아졌다”면서 “물가 상승률이 목표 수준(2%)으로 수렴하는 시기도 당초 예상보다 늦춰질 가능성이 커졌다”고 밝혔다.

2023년 하반기 국내 물가가 꿈틀댄 원인은 주로 국제유가와 농산물 가격 상승이었다. 에너지 사용량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으로서는 특히 국제유가 상승이 뼈아팠다. 글로벌 시장에서 원유의 몸값이 높아질수록 한국 경제는 더 많은 달러를 써야 한다. 이 경우 달러 대비 원화의 가치는 자연스레 떨어진다. 즉, 고유가·고환율이 전방위적으로 국내 물가를 자극하면서 물가 안정 예상 시점이 나중으로 밀리는 환경이 조성되는 셈이다.

유가 상승 등에 따라 물가 안정 시점이 늦어지면 그만큼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도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물가 안정이 제1목표인 중앙은행으로서는 고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 수준을 더욱 높이거나 최소한 긴축적인 수준에서 오래 유지할 필요성이 커진다. 실제로 골드만삭스는 “한국의 수입 에너지 의존도가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정학적 이슈 등으로 에너지 가격이 전망치를 웃돌 경우 물가 둔화 추세를 방해하고 금리 인하 시기를 지연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한은은 2023년 1월 기준금리를 연 3.50%로 인상한 이후 쭉 동결 기조를 이어 왔다. 전문가들은 한은이 이같이 긴축적 금리수준에서 고삐를 놓지 않는 한 국내 경기 반등은 상상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한다. 계속되는 고물가 위에 고금리까지 장기화하는 경우 가계의 실질 소비 여력은 낮아질 수밖에 없고, 이에 민간 소비가 전체 경제 성장에 기여하는 정도를 크게 기대할 수가 없어서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국내 물가는 수입물가를 따라 자연스레 올라갈 것”이라며 “2024년 한국은 1%대 성장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도 “정부와 한은은 2024년 2%대 성장률을 예측하지만 2023년의 성장 부진에 따른 기저효과가 작용한 것으로 보이고 실제 경기 상황은 더 좋지 않을 것”이라면서 “2024년에도 저성장이 지속돼 2년 연속 1%대 성장률을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시장에서 예상하는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은 대체로 2024년 2분기(4~6월)에 몰려 있다. 국내 물가가 예상보다 가파르게 오르면서 당초보다 인하 예상 시기가 뒤로 밀려난 모습이다. 자연히 경기 개선이 체감되는 시점도 2024년 하반기 이후로 지목된다. 윤지호 BNP파리바 연구원은 “한은의 금리 인하가 종전에 예상한 2024년 1분기가 아닌 2024년 2분기에 시작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민 생활고 이어질 듯…“구조개혁으로 경제활력 높여야”

경제 성장은 부진한데 물가는 높고 고금리는 장기화한다면 국민들의 생활은 더욱 팍팍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겹치면 일부 취약계층의 생활고는 악화 일로일 여지마저 존재한다. 앞서 이창용 한은 총재는 “우리 경제가 이미 장기 저성장 국면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출산·고령화가 워낙 심해 빨리 대응해야 하고 5년·10년 내에는 노후 빈곤 문제가 굉장히 큰 사회 문제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위기가 코앞에 다가왔으나 지금은 손 놓고 상심할 때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한국 경제의 장기 저성장을 필연으로 받아들이지 말자는 취지다. 이 총재는 인구 감소 탓에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세간의 비관론에 대해 “소극적인 견해”라면서 구조개혁을 통해 잠재성장률을 2%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노동시장 구조와 생산성을 개선할 경우 장기적인 2%대 성장도 가능하다고 이 총재는 덧붙였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장기 저성장 타개를 위해 노동시장 유연화, 교육제도 개편 등 크게 두 가지 개혁 방안을 제시했다. 정규철 KDI 실장은 “5년 정도 지나면 한국 경제의 1%대 성장이 자연스러운 시기가 올 것”이라면서 “이 같은 구조개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성장률 하락 속도는 더 빨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경제 및 국제정세 변화를 고려해 그간의 성장 전략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특히 중국 경제의 성장이 구조적 한계에 다다른 만큼 새로운 수출시장을 물색하고 중국 내 소비 패턴 변화에 대응하자는 주문이다. 국제경제센터는 “공급망 불안 대응을 포함해 중국발 디리스킹 전략을 준비하는 한편 글로벌 경제 구조 변화에 따른 시장 트렌드에도 적극 발맞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WB의 경우 “정책 당국자들은 오랜 기간 세계 경제의 성장 엔진이었던 중국의 급속한 확장에 의지하지 말고, 한층 창의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혜지 기자 (icef08@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