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이 달아오를대로 달아올랐다. 올들어 35차례나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코스피지수는 올해 말에는 2000선을 넘어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주식시장이 뜨거워지자 새로 증권계좌를 만드는 사람들이 하루평균 1만6000명을 넘어섰고,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에 투자하는 신용융자잔액도 7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주식시장이 과열을 우려할 정도로 활황세를 보이자 정부는 증시로 흘러드는 돈줄을 죄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증권가에서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외과의사 박경철씨(42)는 ‘재야 고수’로 불리는 주식투자 전문가이다.
지난 19일 만난 그는 “주식투자는 ‘투기’가 아니지만 자기확신과 통찰없이 무조건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빚을 내 주식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투자’가 아닌 ‘투기’로 실패를 낳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박씨는 부동산 시장보다는 주식시장이 훨씬 더 전망이 밝을 것으로 내다봤다.
강남지역 아파트 값에 끼어있던 거품은 꺼지는 반면 주식이나 펀드 등 금융자산의 황금기는 앞으로 5년가량 이어질 것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박씨는 “초보 주식투자자들은 직접 투자보다는 펀드 중심의 간접투자를 하면서 증시의 메커니즘을 체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생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매일 종목을 분석하는 전문가들을 상대로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펀드를 팔고 있는 은행들이 과도한 판매수수료를 받고 있다며 여러 사람들과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증권가에서 경이적인 주식투자 수익률을 기록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주식투자로 얼마나 버셨습니까. 요즘 투자하고 있는 종목도 궁금합니다.
“주식투자로 얼마를 벌었는지를 공개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지금은 비상장 기업에만 투자하고 있습니다. 제 직업이 의사인 만큼 제가 잘 알고 분석할 수 있는 바이오 관련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고만 말씀드리지요.”
-외과의사와 주식투자는 거리가 먼 것으로 여겨집니다. 주식투자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의과대학에 재학 중이던 1985년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총칼이 권력의 전부라고 생각하던 시절에 ‘미래사회의 권력은 지식을 기반으로 재편된다’는 토플러의 예측은 많은 것을 깨닫게 했지요. 그 당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뉴스위크’ 등에서는 펀드, 주식, 자산관리와 관련한 기사들이 지면을 도배하고 있었습니다. 그 기사를 읽으면서 국내에선 개념조차 정립돼 있지 않던 ‘투자경제’에 눈뜨게 됐지요. 그러나 국내에서는 관련서적을 구할 수 없었고, 대우증권의 전신이던 삼보증권을 찾아가 봤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주식투자에 대해 눈을 뜨게 됐다는 게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
“남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분야여서 의욕과 자신감이 생겼지요. 미국에서 연수 중이던 선배를 통해 주식투자와 관련한 원서 53권을 받아 그 책을 친구들과 함께 4년간 공부했습니다. 주식투자를 처음 시작한 것도 그때였습니다. 결과는 ‘백전백패’였습니다. 인턴·레지던트 시절 월급을 모두 쏟아부었지만 허사였지요. 그 뒤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전문의가 된 뒤 병원에서 1대에 300만원이 넘는 휴대전화를 받았는데 헨리 포드가 자동차를 처음 만들었던 때가 생각났습니다. 앞으로 전국민에게 휴대전화가 보급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판단돼 한국이동통신을 비롯해 한솔엠닷컴, 한국통신 프리텔, LG텔레콤 등 통신주들을 장외에서 사모았습니다. SK텔레콤 전신인 한국이동통신 주식이 주당 1만~1만2000원, 다른 통신주들은 2000~7000원이면 살 수 있었지요. 99년에 SK텔레콤 주식을 팔았는데 주당 520만원을 받았습니다.”
-주식시장이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활황기를 맞고 있습니다. 주식시장의 과열을 우려하는 시각이 많은데요.
“2002년 주식투자에 대한 강연을 하면서 ‘앞으로 5년 내에 코스피지수 3000시대가 올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아직 코스피지수가 1800안팎 수준이니 제 전망은 빗나간 셈이지요. 그러나 상승이라는 방향은 맞습니다. 현재의 주가는 큰 흐름상 아직 발목을 조금 넘은 수준입니다. 돈의 흐름을 볼 때 지금은 부동산보다는 금융자산이 부각될 수밖에 없는 시기입니다.”
-주식투자의 원칙이 있습니까.
“지난 5년간 부동산을 비롯해 모든 자산의 가격이 올랐습니다. 투자를 하지 않고, 돈을 매트리스에 깔고 잔 사람만 손해를 본 셈이지요. 그러나 모든 투자는 자신만의 투자철학과 확신을 갖고 있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주식투자는 더욱 그렇습니다. 예컨대 고령화사회가 급속도로 진행될 것으로 보고, 바이오나 의약품 관련 업종에 투자를 했다고 합시다. 웬만한 사람들은 주가가 떨어지거나 몇 달간 주가가 오르지 않으면 극도의 초조함과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모두 팔아버리고, 다른 종목으로 갈아타곤 합니다. 이같은 투자자들은 자기자신을 설득한 뒤 확신을 갖지 못하는, 그야말로 ‘~카더라’에 따라 움직이는 투기꾼으로밖에 볼 수 없습니다.”
-강연이나 기고문을 통해 ‘주식시장의 맥락을 보고 투자하라’고 강조하고 있는데 ‘맥락 투자’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외환위기 이후 저금리 시대에는 부동산이 돈이 흐르는 맥락을 주도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외국계 자본들은 국내 주요 부동산을 싹쓸이했습니다. 외국계 자본은 한국의 부동산이 저평가돼 있다는 맥락을 읽은 것이지요. 그러나 지금은 부동산이 돈이 흐르는 맥락을 주도하는 시대라고 볼 수 없습니다. 앞으로 강남지역의 아파트 가격은 거품이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대신 금융자산의 가치가 부각되는 시대가 도래할 겁니다. 급격히 낮아지는 출산율을 볼 때 앞으로 신혼부부들의 고민은 ‘언제 집을 살까’가 아니라 ‘(양가에서 물려받게 될 집 중에서) 어느 집을 먼저 팔까’가 되지 않을까요.”
-최근 들어 주가가 급등세를 보이면서 적금을 깬 뒤 펀드에 가입하는 사람들도 크게 늘어났습니다.
“초보 투자자들이 직접 투자보다는 펀드에 간접투자를 하면서 증시의 메커니즘을 배우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생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매일 종목을 분석하며 직접투자하는 전문가들과 경쟁해 높은 수익률을 올린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간접투자를 할 때는 펀드를 잘 고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펀드시장은 아직까지 개선돼야 할 점이 많습니다. 자산운용사가 자기 자본을 동원해 주식을 매입하면서 시세를 끌어올리고, 수익률을 높이면 이를 미끼로 일반 투자자들의 투자자금을 끌어 모으는 것은 문제입니다. 미국에서는 주가 등락에 따라 수익률의 변동성이 커지는 펀드는 가입하지 말아야 할 펀드의 첫번째 조건으로 꼽힙니다.”
-직접투자말고 펀드에도 투자하고 있는지요.
“공부하는 차원에서 몇개 펀드에 가입했습니다. 펀드에 가입한 뒤 펀드 판매를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는 은행들의 수준이 너무 낮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은행 창구직원들은 펀드 상품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기는커녕 기본적인 질문에도 제대로 답변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펀드에 가입한 지 1년6개월이 지나도록 운용보고서조차 내지 않는 은행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은행들이 챙기는 펀드 판매·관리 수수료는 대략 1.5%나 됩니다. 판매수수료가 낮은 온라인 펀드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것도 은행들이 보이지 않는 압력을 가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은행을 상대로 판매수수료를 돌려달라는 취지의 소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맥락 투자’의 관점에서 봤을 때 앞으로 어떤 종목이 유망하다고 보십니까.
“기계가 중심이 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사람이 핵심 생산수단으로 바뀌었고, 사람에 의해 지속가능한 발전이 있는 산업이 미래를 이끌어갈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런 측면에서 레저, 엔터테인먼트, 환경, 대체에너지, 바이오 관련 업종이 유망하다고 봅니다.”
-시골의사 생활에는 만족하십니까.
“서울생활을 접고, 안동으로 내려가려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아이들 교육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했지요. 아이들 교육만을 생각한다면 제 방법이 옳았다고 판단합니다. 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입시학원에서 혹사시키는 것은 기계가 생산의 중심이던 시대의 논리로 만들어진 교육 방식입니다. 아이들이 다양한 가능성을 발현할 수 있는 기회를 말살하는 것이지요. 앞으로 펼쳐질 미래는 창의력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 이끌 것이라고 봅니다.”
▲ 박경철은 누구?
1965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영남대 의대를 졸업한 뒤 서울과 대전의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다 2004년 안동으로 내려가 친구들과 함께 신세계병원을 개업했다. 그는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진료를 하고, 수요일 오후부터 주말까지는 방송활동과 기고, 강의를 한다. 증권사 임직원 교육은 물론이고 펀드매니저, 시중은행장들도 주식투자와 시장 전망에 관한 그의 견해를 듣고 싶어할 정도다.
그는 90년대 후반 증권정보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경이적인 주식투자 수익률을 기록하고, 족집게처럼 정확한 시장예측력을 보여주면서 증권가에서 ‘재야 고수’라는 별칭을 얻었다.
외과의사의 눈으로 세상과 사람을 통찰한 책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과 주식 투자전문가로서 시장경제를 탐구한 ‘시골의사의 부자 경제학’을 출간해 베스트셀러 저자 반열에 올랐다. 10년간 1만1000여권의 책을 통독할 정도로 독서에 매달린 그는 현재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그의 아내도 안동에 있는 병원에서 내과의사로 일하고 있다. 주식투자로 많은 돈을 번 그는 “장애인 복지에 관심이 많고 그 분야에서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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