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미국 월가의 '채권왕'으로 불렸던 빌 그로스(76)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월가에서 채권투자의 전설은 누구인가라고 물었을 때 대부분 '빌 그로스(Bill Gross)라고 떠올릴 것입니다.
세계 최대 채권 펀드 핌코의 최고투자책임자(CIO)였던 그로스는 2001년 미국 경제주간지 포춘으로부터 '채권왕(Bond King)'이란 영예로운 호칭을 얻었고, 미국 펀드평가사 모닝스타가 선정하는 '올해의 채권 매니저 상'을 1998년과 2000년, 2007년에 세 번이나 수상을 했습니다.
빌 그로스는 독특한 인생 이력으로 유명한데 우선 그는 타고난 도박꾼이였습니다.
듀크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한 후 미 해군 특공대(SEAL)에 입대하여 베트남전에 여러 차례 출격을 하기도 했습니다. 제대 후 '딜러를 이기는 방법(Beat the Dealer)이라는 책을 탐독해 블랙잭을 스스로 익힌 다음, 라스베이거스에서 하루 17시간씩, 5개월 동안 블랙잭을 하였습니다. 그는 종잣돈의 2%이상을 베팅하지 않는다는 분산투자 원칙으로 200달러를 들고 4개월 만에 1만 달러로 불리며 천재 도박사로 유명해졌습니다. 그 돈으로 UCLA 등록금을 대고, MBA를 취득하였으며, 1970년 생명보험사 퍼시픽 뮤츄얼에 입사하면서 채권 투자 시장에 처음 발을 들여놓게 됩니다. 그로스는 도박을 통해 *리스크 테이킹(Risk-taking)을 배웠다고 합니다.
*리스크테이킹 - 일을 성취하는 데 위험을 각오하는 것
'퍼시픽 뮤추얼'에서 일하는 동안 빌 그로스는 주식 투자의 전설 워런 버핏에게 대출을 해주는 인연을 맺게 됩니다.
오늘날 워런 버핏이 대출을 하는 것이 상상이되지 않지만 사업 초기에는 버핏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1970년대 초 버핏은'가이코'라는 작은 보험회사를 인수하기 위해 퍼시픽 뮤추얼 라이프에 0.1억$ 대출 신청했습니다. 당시 버크셔 해서웨이는 신용도가 그리 좋지 못하여 대출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당시 버핏의 회사를 분석해 대출을 실행하는데 있어서 큰 기여를 한 사람이 바로 빌 그로스였습니다. 그 후 이 자금으로 인수한 가이코 보험사를 들어오는 꾸준한 현금이 버핏의 사업 확장에 상당한 기여를 하게 됩니다. 버핏은 그 후 빌 그로스의 견해를 참고하며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채권 펀드계의 살아있는 신화
그는 미국 채권시장의 창시자였고, 개척자였습니다. 지금껏 빌 그로스만큼 채권시장에서 돈을 번 사람을 없었습니다.
빌 그로스가 30년 넘게 세계 채권 투자 시장의 전설로 군림한 가장 큰 비결은 바로 유연성입니다.
대다수 채권매니저들이 미국 국내 채권에만 투자를 할 때 그는 이머징마켓 채권이나 비(非)달러화 표시 채권 투자를 늘려 포트폴리오를 다양화시켰습니다.
그는 또 투자자들에게 시장 위험을 가감 없이 신속히 알려주는 채권매니저로도 유명합니다.
빌 그로스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랴 주택 담보대출)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인 2005년 관련 투자를 회수하여 투자자들의 자산을 지켜준 가장 성공적인 채권 투자 운용자라는 명성을 얻었습니다.
핌코 토털리턴 펀드
빌 그로스는 모하메드 엘 에리언(현 핌코 최고 경영자) 등 동료들과 함께 1971년 핌코(PIMCO)를 창업합니다.
그리고 그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펀드를 선보이는데 그것이 바로 1987년 처음 선보인 '핌코 토털리턴 펀드'입니다.
채권을 통한 자본 차익뿐 아니라 외환 거래에 따른 환율 차익까지 올린다하여 '토털리턴(total return)'이란 이름을 붙혔습니다. 처음에는 펀드 가입자의 최소 투자 규모를 50만 달러로 제한하여 사실상 기관투자가들의 자금만을 받았지만 1998년에 최소 투자 규모를 2500달러로 낮춰 개인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하였습니다.
토털리턴 펀드는 1987년 설립 이래 그가 퇴사한 2014년까지 연평균 7.8%의 수익률을 안겨주었고, 2013년에는 자산이 무려 3,000억 달러로 불어났습니다. 특히나 토털리턴 펀드는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더욱 유명세를 탔습니다. 지난 2008년 9월 7일 헨리 폴슨(Henry Paulson)당시 미 재무장관이 패미내와 프레디맥 등 양대 모기지업체의 국유화를 발표했을 때, 토털리턴 펀드는 그날 하루에만 17억 달러의 수익을 냈습니다. 두 모기지 회사의 채권을 미리 대량으로 사두었기 때문입니다.
빌 그로스가 거둔높은 수익률만큼이나 그의 특이한 개인적 캐릭터도 늘 관심대상이었습니다.
일벌레로 이름 높은 그는 매일 새벽 4시 30분이면 일어나 블룸버그 단말기를 켜고 미국과 일본, 유럽 등 글로벌 경제동향을 체크한 뒤 6시면 출근했습니다. 참모들과 회의를 할 때 블라인드로 햇빛을 완전히 가리도록 하고 휴대전화를 모두꺼 회의에 집중하도록 했습니다.
명성에 비해 우울했던 말년
빌 그로스의 마지막은 행복하지 못하였습니다. 2011년과 2012년 토털 리턴 펀드의 실적이 부진했고 이로 인해 PIMCO내에서 경영 갈등이 생겼습니다. 2014년 9월 26일 그는 40여 년간 일했던 PIMCO의 CEO자리를 내놓았습니다. 그는 야누스 캐피털 그룹으로 옮겨 투자를 계속했지만 그가 회사를 떠날 때 PIMCO에서 돈을 빼낸 많은 투자자들이 야누스 캐피털 그룹에 투자하지는 않았고 실적도 부진했습니다. 4년간 평균 수익률 1% 이하였습니다.
시장은 변화했고 기록적인 주식시장의 상승장에서 빌 그로스도 채권투자만으론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 기회에 채권시장과 이별하기로 결심하며 2019년 3월 공식적으로 은퇴를 발표하였습니다.
그는 지난 20여년 간 8억 달러를 사회 공헌성 기부금을 냈고 가족의 이름으로 만든 자선단체를 운영하며 노후를 보낼 계획을 내세웠습니다. 펀드매니저로는 은퇴했지만 개인적으로 주식 투자는 계속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기록적인 주식 상승 시대 이후엔 다시 전직 채권왕으로 채권 투자를 노리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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